가을
마곰 · 2026년 10월 15일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것은 박스테이프가 찌익, 찢어지는 거칠고 날카로운 마찰음이었다.
나는 부엌 서랍장에서 마른 멸치를 한 줌 꺼내려다 말고 손을 멈추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가르고 안방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내 살갗을 직접 긁어내리는 것처럼 시렸다. 지우의 방 문은 손가락 두 마디쯤 열려 있었다. 그 틈새로 보이는 것은 반쯤 열린 이민 가방과, 아직 챙기지 못해 책상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필통, 그리고 지우의 둥근 정수리였다.
손녀아이가 이곳에 내려온 것은 일 년 전의 일이다.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서울의 숨 막히는 열기 속에서 길을 잃었다며 울먹이던 아이는 내 품으로 숨어들었었다. 제 어미가 새 남편을 따라 바다를 건너간 지 두 달 만이었다. 그때 지우가 들고 온 짐은 겨우 배낭 하나가 전부였는데,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 시골집 구석구석에 아이의 온기가 묻은 물건들이 참 많이도 늘어나 있었다. 그것들이 다시 상자 속으로 포개어 들어가고 있었다. 테이프가 박스 위를 가로지를 때마다 지우가 이곳에 남겨두었던 일 년의 시간도 함께 밀봉되는 것만 같았다.
교단을 떠나던 다섯 해 전의 겨울이 떠올랐다. 마지막 종소리가 울리고,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간 텅 빈 교실에 혼자 남았을 때 느꼈던 그 막막한 적막. 칠판에 적힌 송별의 글씨를 지우개로 지워내던 손끝의 떨림. 나는 이제 더는 쓸모를 다하지 못하는 낡은 교구처럼, 부모님이 살다 가신 이 외딴 시골집에 남겨질 터였다. 은퇴가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신호였다면, 지우의 떠남은 내게 찾아온 진짜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같았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마른 멸치의 똥을 빼고 뚝배기에 던져 넣었다. 슬퍼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오늘 아침이 지우에게 차려줄 수 있는 마지막 밥상이었다.
부엌 창문을 조금 열자, 알싸한 늦가을 아침 바람이 흘러 들어와 뺨을 건드렸다. 마당의 감나무는 이미 잎을 다 떨구고 붉은 감 몇 개만 등불처럼 매달고 있었다. 나는 밭에서 뽑아 서리 맞추어 둔 무를 얇게 썰어 넣고, 들기름에 달달 볶았다. 지우가 유독 좋아하던 맑은 소고기뭇국을 끓일 참이었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번지자, 간장과 마늘을 넣고 물을 부었다. 국이 끓는 동안 가을볕에 말려둔 시래기를 꺼내 조물조물 된장에 무쳤다.
"할머니, 냄새 좋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지우가 부엌문틀에 기대어 서 있었다. 밤새 잠을 설쳤는지 눈가가 조금 부어 있었지만, 억지로 지어 보이는 미소는 말갛고 예뻤다.
"얼른 씻고 와. 국 다 끓었어."
나는 일부러 지우의 얼굴을 깊게 바라보지 않고 국자만 휘저었다. 눈이 마주치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쓸쓸한 말들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단출하지만 정성스러운 아침 상이 차려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과 맑은 뭇국, 잘 익은 총각김치와 자작하게 볶아낸 시래기나물. 숟가락을 드는 지우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잘 먹겠습니다."
지우는 국물을 크게 한 술 떠 넣더니 "어우, 시원하다" 하며 과장스럽게 소리를 냈다.
"서울 올라가면 이런 국 못 먹어서 어떡하지? 고시원 근처에는 다 인스턴트뿐일 텐데."
"반찬이랑 국거리 좀 얼려서 택배로 보내마. 주소 나오면 바로 문자 해."
"됐어, 할머니 힘들게 뭘 보내. 나 이제 스물둘이야. 밥은 알아서 잘 챙겨 먹어."
"너 아침 거르는 버릇 아직 못 고쳤잖니. 서울은 바쁘다고 다들 굶고 다녀. 남들 뛴다고 같이 뛰지 말고, 네 속도대로 가."
나도 모르게 또 은퇴한 초등학교 교사 같은 잔소리가 튀어나왔다. 지우는 배시시 웃으며 내 밥 위에 잘 익은 총각김치를 얹어주었다.
"알았어요, 차 선생님. 명심하겠습니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하지만 웃음 끝에 찾아온 침묵은 방금 전보다 훨씬 무겁고 길었다. 달그락거리는 숟가락과 젓가락 소리만이 고요한 방 안을 채웠다. 지우는 국그릇을 응시했고, 나는 창밖의 낙엽을 바라보았다.
지우야, 너를 보내고 나면 이 넓은 집에서 나는 또 어떻게 긴 겨울을 버텨내야 할까.
목구멍이 턱 막혀와 밥이 모래알처럼 서글펐지만, 나는 억지로 국물을 삼켰다.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뿌연 김 서림 너머로, 내 손녀딸의 앳된 얼굴이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지우가 마지막 상자를 여미고 나니 해가 어느새 중천이었다. 버스 시간까지는 두 시간 남짓이 남아 있었다. 짐은 이미 현관 앞에 나란히 줄을 서 있었다. 테이프로 꽁꽁 여민 상자 두 개와 배가 불룩한 이민 가방 하나, 그리고 그 위에 얹힌 낡은 배낭. 그것들을 등지고 마루 끝에 앉아 있자니 집 안의 공기가 낯설게 서걱거렸다.
"할머니, 우리 뒷산 한 바퀴만 돌고 올까?"
지우가 운동화 끈을 묶으며 물었다. 나는 무릎이 시원찮다는 핑계를 대려다 그만두었다. 이 아이와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날이 앞으로 몇 번이나 남았을지, 헤아려 보기가 겁이 났다.
집 뒤 밭둑을 지나면 상수리나무가 늘어선 좁은 오솔길이 나온다. 발을 디딜 때마다 마른 잎이 바스락, 바스락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지난밤 바람이 꽤 불었던 모양인지 길 위에는 누런 잎과 붉은 잎이 두툼하게 깔려 있었다. 지우는 감빛 머플러를 턱 끝까지 끌어올리고 한 발짝 앞서 걸었다.
나는 늘 그렇듯 지우의 뒤에서 걸었다. 소풍 때마다 아이들 꽁무니에 서서 머릿수를 세던 버릇이 사십 년 가까이 몸에 배어 있었다. 하나, 둘, 셋. 노란 모자를 쓴 병아리 같은 머리들이 줄을 맞춰 언덕을 오르던 봄날이 있었다. 이제 내가 세어야 할 머리는 하나뿐인데, 그 하나마저 오늘 내 셈에서 빠져나갈 참이었다.
"여기 기억나? 나 처음 끌려 나왔던 데."
지우가 개울가 너럭바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기억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내려온 지 석 달이 넘도록 방 밖으로 나오지 않던 아이를, 나는 이른 봄 냉이를 캔다는 핑계로 억지로 이 바위까지 데려왔었다. 그날 지우는 호미 한 번 쥐지 않고 바위에 웅크린 채 물소리만 들었다.
"냉이는 내가 다 캤지. 너는 앉아서 콧물만 훌쩍거리고."
"아, 그건 추워서 그랬던 거고."
지우가 바위 위에 털썩 앉았다. 나도 그 곁에 엉덩이를 붙였다. 돌은 가을볕을 머금어 생각보다 따스했다. 개울물은 봄보다 한결 가늘어져서, 낙엽 몇 장을 싣고 졸졸 아래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참을 말없이 물만 바라보던 지우가 운동화 코로 낙엽을 이리저리 밀었다.
"할머니. 나 그때 진짜로,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 숨 쉬는 것까지."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해도 이 아이의 말을 끊어 버릴 것만 같았다.
"엄마는 같이 가자고 했어. 거기 가면 다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그 집엔 벌써 나만 한 딸이 있더라. 엄마 옆자리에."
이번에도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제 어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바다 건너에서도 달마다 돈을 부쳐 왔고, 이번에 올라가 방 얻을 돈도 그 애가 보냈다. 주말이면 시차를 거슬러 내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밥은 먹느냐고 물었다. 그래도 지우 눈에는 그 집에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딸을 탓하지 못했다. 나도, 내 딸도, 혼자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었다.
"근데 할머니가 매일 아침 일곱 시만 되면 문 두드리잖아. 밥 먹어라, 밥 먹어라. 처음엔 그게 너무 싫어서 이불 뒤집어쓰고 귀를 막았거든."
지우가 작게 웃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배가 고픈 거야. 할머니 된장국 냄새가 났는데, 그게 먹고 싶더라. 그게 너무 신기해서 혼자 한참 울었어. 나 아직 배도 고프고 뭘 먹고 싶기도 한 사람이구나, 하고."
개울 건너편 상수리나무에서 잎 하나가 빙글빙글 맴돌며 떨어졌다. 나는 그 잎이 물 위에 내려앉을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지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안 될 것 같았다.
"할머니가 나 살린 거야."
"살리긴 누가 살려. 밥이 살렸지."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퉁명스럽게 나왔다. 지우는 그런 내 옆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어깨를 기대 왔다. 머플러 너머로 아이의 체온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일 년 전 배낭 하나를 메고 정류장에 내려서던, 바람 한 줄기에도 넘어갈 것처럼 앙상하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머리 위에서는 잎을 거의 다 떨군 상수리나무 가지들이 하늘을 가느다란 금처럼 갈라놓고 있었다. 저렇게 다 내주고 나면 나무에는 무엇이 남는 걸까. 나는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이제 내려가자. 버스 놓칠라."
먼저 일어선 것은 나였다. 그런데 비탈길을 내려오는 동안, 젖은 낙엽에 미끄러질 때마다 내 팔을 붙드는 손은 지우의 손이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던 내가, 이제는 손녀의 손에 이끌려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지우의 정수리에 마른 잎 하나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떼어 주려다 말고, 그냥 두었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감나무가 먼저 우리를 맞았다. 빈 가지 끝에 남은 감은 세 알이었다. 아침에 부엌 창으로 내다볼 때만 해도 성하던 한 알은, 그새 까치가 다녀간 모양인지 주황빛 속살을 드러낸 채 반쯤 쪼여 있었다.
"할머니, 저거 하나 따 가면 안 돼? 버스에서 먹게."
지우가 까치발을 들고 가지 끝을 올려다보았다. 나도 모르게 헛간 쪽으로 몇 걸음 옮겼다. 벽에 기대 세워 둔 장대 끝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손을 뻗기도 전에 입이 먼저 열렸다.
"놔둬. 까치밥이야."
"딱 하나만."
"하나 따면 둘 따고 싶은 법이야. 그건 새들 몫으로 남겨 두는 거라고 내가 몇 번을 가르쳤니."
가르쳤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그것이 지우가 아니라 사십 년 가까이 만난 아이들에게 해 온 말이라는 걸 알았다. 늦가을이면 나는 아이들을 교정 감나무 아래 줄 세워 놓고 같은 말을 했다. 사람은 다 가져가지 않는 거다. 남겨 두는 것도 마음이다. 그러면 꼭 한 녀석은 손을 번쩍 들고, 까치가 안 오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그럼 겨우내 등불 노릇이라도 하겠지. 나는 그렇게 대답하곤 했다.
지우는 입을 삐죽이더니 감나무 둥치에 손바닥을 대었다. 나도 그 옆에 서서 가장 낮게 늘어진 가지 하나를 끌어당겼다. 숲에서 품었던 물음이 아직 목에 걸려 있었다. 저렇게 다 내주고 나면 나무에는 무엇이 남는 걸까.
가지는 메마르고 거칠었다. 잎이 떨어져 나간 자리마다 손톱 반달만 한 흉터가 나 있었다. 그런데 그 흉터 바로 위에 좁쌀만 한 것이 단단하게 웅크리고 있었다. 갈색 비늘을 겹겹이 두른, 작고 뾰족한 눈이었다.
나는 엄지로 그것을 가만히 쓸어 보았다. 겨울눈이었다.
"그게 뭐야?"
"겨울눈. 내년에 나올 잎이랑 꽃이 이 안에 다 들어 있어."
돋보기를 하나씩 나눠 주고 교정의 목련 가지를 들여다보게 하던 겨울 수업이 떠올랐다. 나무는 잎을 떨구기 전에 이미 봄을 만들어 둔다고, 그러니 겨울나무를 보고 죽었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나는 칠판에 또박또박 적었었다. 아이들에게 수십 번을 가르친 것을, 정작 나는 교단을 떠나던 겨울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섯 해 전 텅 빈 교실을 나서며 나는 다 내주고 빈 가지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빈 가지로 나는 지난 일 년 동안 매일 아침 일곱 시에 문을 두드렸다. 냉이를 캐고, 된장국을 끓이고, 웅크린 아이 곁에 앉아 물소리를 들었다. 쓸모를 다한 낡은 교구였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잎이 진 자리에서도 무언가는 내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신기하다. 이렇게 작은데."
지우가 고개를 바짝 들이밀고 겨울눈을 들여다보았다. 찬바람에 발갛게 언 그 볼을 보다가 나는 또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나무는 겨울눈을 끝내 붙들고 있지 않는다. 봄이 오면 비늘을 열어 내보낼 뿐이다. 품고 있던 것이 제 힘으로 터져 나가야, 그 나무의 한 해가 비로소 끝까지 가는 것이다.
아침 내내 나는 이 아이를 보내는 일을 겨울이 오는 일이라고만 여겼다. 어쩌면 그것은 봄을 내보내는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할머니, 울어?"
"바람이 차서 그래. 눈이 시리다."
나는 쥐고 있던 가지를 놓고, 말없이 헛간으로 걸어가 아까 손을 대다 만 장대를 들고 나왔다.
"됐어, 할머니. 까치밥이라며."
"까치한테 하나만 빌리자. 봄에 갚으면 되지."
장대 끝 갈라진 틈에 가장 말갛게 익은 한 알을 골라 끼우고 살살 비틀었다. 툭, 가벼운 소리가 났다. 교단에 서는 내내 아이들 앞에서 한 번도 따 본 적 없는 감이었다. 손바닥에 내려앉은 홍시는 볕을 먹어 따뜻했고, 조금만 힘을 주어도 터질 듯 말랑했다. 나는 카디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것을 두어 번 감싸 지우에게 내밀었다.
"주머니에 넣지 마. 터진다. 두 손으로 들고 가."
지우는 손수건 꾸러미를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 끝에 남은 두 알이 빈 하늘에서 잠시 흔들리다 이내 고요해졌다. 저것들은 겨우내 저 자리에 매달려 까치를 기다리며 등불 노릇을 할 것이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냉동실을 열었다. 택배로 부치려고 며칠 전부터 하나둘 얼려 둔 국거리 봉지들 사이에서 하나를 꺼내 신문지로 둘둘 말았다. 오늘 밤 서울에 닿을 즈음이면 알맞게 녹아 있을 것이다. 그거면 됐다.
냉동실 문을 닫고 돌아서니 지우가 부엌문틀에 기대어 서 있었다. 아침과 같은 자리, 같은 자세였다. 어깨에는 벌써 배낭이 걸려 있었다. 나는 아이 등 뒤로 돌아가 신문지 뭉치를 배낭 맨 위에 찔러 넣고, 지퍼를 끝까지 올려 주었다. 아이는 돌아보지도, 무엇이냐고 묻지도 않고 두 손에 받쳐 든 꾸러미만 내려다보았다.
지우가 떠나도 이 집에는 감나무가 남고, 겨울눈이 남고, 내가 남는다. 봄은 아직 멀었지만, 오지 않을 리도 없었다.
마을 버스 정류장은 큰길로 나가는 삼거리 모퉁이에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대합실 안에는 누가 갖다 놓았는지 모를 낡은 나무 의자 하나와, 귀퉁이가 누렇게 바랜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읍내로 나가는 버스는 하루 다섯 번. 지우가 탈 차는 두 시 사십 분이었다.
상자들은 택배로 부치기로 하고 현관에 남겨 두었다. 이민 가방은 내가 끌었고, 지우는 국거리를 찔러 넣은 배낭을 멨다. 일 년 전 이 정류장에 내리던 날 메고 온 바로 그 배낭이었다. 그날 아이는 버스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뎠고, 나는 아이를 붙잡으며 가방이 참 가볍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이의 두 손에는 손수건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집에서 정류장까지 오는 내내, 지우는 그것을 새알이라도 되는 양 받쳐 들고 걸었다.
"할머니, 이제 들어가. 바람 차다며."
"버스 오는 거 보고 갈 거야."
"그러다 감기 걸려. 내가 애도 아니고."
"애 맞아. 내 눈엔."
지우는 대꾸 대신 의자 끝으로 엉덩이를 옮겨 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길 끝을 바라보았다.
학교에서도 늘 이랬다. 하굣길이면 교문 앞에 서서, 아이들이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내일 또 올 아이들인데도 그랬다. 마지막 종이 울리던 날에는 손을 흔들어 줄 아이가 남아 있지 않아서, 빈 운동장을 오래 바라보다 돌아섰다.
"할머니."
"응."
"나 거기 가서 또 안 되면 어떡하지."
지우는 무릎 위의 손수건 꾸러미만 내려다보았다. 아침 내내 밝게 굴던 얼굴이 처음으로 그늘져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몰라 아이의 손등만 내려다보았다. 평생을 아이들 앞에 서 왔는데, 정작 이럴 때 필요한 말은 한 번도 칠판에 적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안 되면 또 내려와. 냉이는 내년에도 나."
"그게 뭐야."
지우가 피식 웃었다.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농담은 아니었다. 이 아이에게 돌아올 데가 여기 말고는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웃음 끝에 또 침묵이 찾아왔지만, 아침 밥상머리의 침묵처럼 무겁지는 않았다.
길 끝에서 초록색 버스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때였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버스를 보자 아이가 먼저 벌떡 일어섰다. 나는 무릎을 짚고 일어나느라 한 박자 늦었다. 그 한 박자가 이상하리만치 길었다.
버스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추고 문이 열렸다. 나는 끌고 온 이민 가방을 계단 위로 밀어 올렸다. 지우는 꾸러미를 한 손에 옮겨 받치고 가방 손잡이를 받아 쥐다 말고 나를 돌아보았다.
"할머니, 아침 꼭 먹어. 혼자라고 거르지 말고."
내가 하던 잔소리였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너나 잘 먹어. 그리고 지우야."
"응."
"남들 뛴다고 같이 뛰지 마. 네 속도대로 가."
아침 밥상에서 한 말을 나는 다시 했다. 이번에는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했다. 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고, 다시 한번 크게 끄덕였다.
"알았어요, 차 선생님."
문이 닫혔다. 창가 자리에 앉은 지우가 무릎 위에서 손수건을 풀었다. 버스에서 먹겠다던 말을 지키느라 정류장 의자에서는 끝내 풀지 않던 것이었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이는 홍시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꼭지 옆 얇은 껍질을 손톱으로 살짝 벗겨 한 입 베어 물었다. 말간 단물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우는 입가에 주황빛을 묻힌 채 나를 보고 웃더니, 끈적한 손바닥을 유리창에 꾹 붙였다.
나는 손을 들어 흔들었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니 보이지 않고 나서도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이번에는 흔들어 줄 손이 있었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짧게 떨렸다. 목에 건 돋보기를 끼고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할머니, 가방에 이거 뭐야. 국거리네. 감 엄청 달아. 손수건은 빨아서 갖다줄게. 갖다준다는 말을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러고는 답장 칸에 손가락을 오래 올려 두었다가, 주소 나오면 바로 문자 해, 하고 아침에 한 말을 또 적어 보냈다.
돌아오는 길은 혼자였다. 혼자 남는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남편을 먼저 보낸 해에도, 딸이 바다를 건너던 해에도 그랬다. 바람이 가만가만 등을 떠밀었다. 마을 어귀를 지나 고개를 들자 우리 집 감나무가 먼저 보였다. 빈 가지 끝에서 감 두 알이 기울어 가는 햇볕을 받아 정말 등불처럼 환했다. 그 아래 가지마다, 보이지도 않는 겨울눈들이 저마다 비늘을 여미고 있을 것이었다.
부엌에 들어서니 아침에 쓴 뚝배기가 개수대 옆에 엎어져 있었다. 나는 쌀 한 컵을 덜어 씻었다. 한 사람 몫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래도 내일 아침 일곱 시에 밥은 지어질 것이다. 이번에는 나를 위해서.
겨울이 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맞을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