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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마곰 · 2026년 10월 15일

"니들이 '갑'의 횡포를 알아? 하청업체 '을'의 피눈물 나는 설움을 아냐고!"

나는 눈꼬리를 억지로 접고, 입꼬리를 귀밑까지 찢어 올렸다.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인위적이지만, 거래처 접대 자리와 임원 회의에서 수만 번 시연하며 완성해 낸 궁극의 가면. 바로 25년간 단련된 '자본주의 직장인의 미소'였다!

"받아라! 제1식, '상사의 썰렁한 부장님 개그에 영혼을 완전히 비워내고 박장대소해 주기'다!"

나는 두 손으로 무릎을 탁 치며, 단전에서부터 공허한 공기를 끌어올려 옥상이 떠나가라 외쳤다.

"아하하하하하! 아유, 본부장님! 역시 유머 감각이 우주 최강이십니다요! 어떻게 그런 기발한 말씀을! 제가 오늘 배꼽을 집에 두고 와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배꼽 빠져서 응급실 갈 뻔했습니다! 하하하하하!"

내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기쁨이나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0.0001%도 함유되지 않은, 순도 100%의 '절대 무(無)의 공허한 리액션 음파'였다!

콰아아아앙—!

투명한 충격파가 대기를 찢으며 세 감사관을 정면으로 덮쳤다. 그 안에 담긴 아득한 허무함과 자기기만, 그리고 생존을 위해 자아를 거세해 본 자만이 뿜어낼 수 있는 끔찍한 정신적 진공 상태가 감사관들의 인공지능 회로와 신성 코어를 강타했다.

<크아아악! 이, 이게 무슨 파동이지?! 감정이...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엄청난 긍정 에너지로 위장되어 있어! 논리 회로가 충돌한다!>

<방금 저자의 웃음은 진심인가, 조롱인가?! 분석 불가! 오차율 999% 돌파!>

감사관들의 얼굴에 달린 QR코드가 미친 듯이 깜박거리며 빨주노초파남보 총천연색 에러 화면을 토해냈다. 급기야 좌측 감사관과 우측 감사관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야, 3호기! 너 방금 저 관리자의 유머에 진짜로 웃었지?! 너도 오염된 거 아니야?!>

<무슨 개소리야 2호기! 네 QR코드나 똑바로 봐, 지금 아부 모드로 정렬되고 있잖아!>

"틈을 보였구나, 온실 속의 본사 정규직 놈들!"

나는 비틀거리며 내분 조짐을 보이는 놈들을 향해 한 발짝 내디뎠다. 그리고는 지끈거리는 내 오른쪽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이건 어젯밤 최 상무랑 거래처 김 사장 비위 맞추느라 마신 소맥 스무 잔의 결정체! 제2식, '목요일 회식 다음 날 아침 지옥철에서 겪는 극한의 숙취'다!"

화아아아악—!

내 정수리와 어깨에서 녹색과 누런색이 뒤섞인 끔찍한 아우라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것은 알코올이 분해되며 생긴 아세트알데히드가 혈관을 타고 돌며 뇌세포를 망치로 때리는 고통, 위산이 식도를 타고 역류할 때의 시큼하고 뜨거운 작열감, 그리고 이 와중에도 오전 9시까지 출근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융합된 생체 화학 병기였다!

안개가 감사관들의 호흡기(비록 위장용 육체였지만)와 아스트랄 신경망으로 빨려 들어갔다.

<커허어억! 우욱! 머,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다차원 연산 장치가 지끈거린다!>

<우웨에엑! 속이... 내 영혼의 코어가 뒤집어지고 있어! 이 시큼하고 역겨운 에너지는 대체 뭐냐! 어제 먹은 암흑물질이 역류한다!>

가운데 서 있던 반장 격인 1호기 감사관마저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무릎을 꿇었다. 놈들의 빳빳하던 블랙 수트가 식은땀과 숙취의 독기로 축축하게 구겨졌다.

"하아, 하아... 아직 안 끝났다. 너희 같은 본사 엘리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아냐? 바로 근거도 없고 대책도 없지만 일단 긁고 보는 무책임한 결재 권력이다!"

나는 뒷주머니에서 낡아빠진 가죽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고이 모셔두었던 황금빛 플라스틱 조각 하나를 엄지와 검지로 경건하게 뽑아 들었다. 영업지원팀 부장에게 주어진 유일무이한 절대 반지이자, 월 한도 150만 원의 제한된 권능.

나는 그것을 밤하늘의 달빛을 향해 높이 쳐들었다.

"나와라! K-직장인 최종 오의, '법인카드의 위엄(feat. 무리한 일시불)'!"

번쩍—!

내 손끝의 IBK기업은행 법인카드 마그네틱 선에서 눈부신 금색 레이저가 하늘로 치솟았다. 옥상 위의 밤하늘이 찢어지며 거대한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45억 년 묵은 나의 본래 신성력이 '접대비 및 복리후생비'라는 지구 자본주의의 개념과 결합하여 기상천외한 물질 창조(Materialization) 마법을 발동시킨 것이다!

<저, 저건...! 시공간을 왜곡시켜 거대 질량체를 소환하고 있어! 피해야 해!>

1호기 감사관이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숙취로 다리가 풀린 놈들에게 회피 기동 따위는 불가능했다.

갈라진 먹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소행성도 아니요 심판의 벼락도 아니었다. 그것은 눈부신 설화(雪花) 마블링이 은하수처럼 촘촘히 박혀 있는, 가로 세로 5미터 크기의 초거대 '횡성 한우 투 플러스(1++) 꽃등심' 덩어리였다! 게다가 그 표면에는 이미 최상급 참숯의 화력으로 시어링(Searing)이 시작되어 고소한 마이야르 반응의 육즙이 폭포처럼 흐르고 있었다!

"먹어라! 이게 바로 영수증 첨부 안 하고 긁어버리는 부장님의 등심 폭격이다!"

<말도 안 돼! 예산 사전 승인도 받지 않고 저런 고단가 질량체를 일시불로 소환하다니! 저, 저런 무책임하고 방만한 권능이 어디 있단 말인가아아악—!>

자비심 없는 지구의 중력과 내 분노의 인력이 더해진 거대한 한우 등심 덩어리가 마하 3의 속도로 감사관들의 머리 위로 낙하했다.

콰아아아아앙—! 치이이이익—!

옥상 바닥이 내려앉을 듯한 굉음과 함께, 달궈진 불판에 고기 올릴 때 나는 경쾌하고도 군침 도는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고소한 한우 기름 연기와 함께, 본사 구조조정 위원회 제4기동감사반 요원 세 명은 육즙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소멸(정확히는 본사 의무실로 강제 사출)되었다.

잠시 후, 환상처럼 소환되었던 거대 등심 덩어리가 빛의 입자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옥상 바닥에는 그을린 자국 하나 남지 않았고, 오직 내 코끝에만 아련하게 남은 최고급 소고기 숯불 구이의 잔향이 방금 전의 사투가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